여행

[스크랩] 바티칸 박물관미술관

알암브라 2008. 12. 26. 11:15

 

 (가져온글)성베드로대성당을 보면서 중세 유럽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했고 오늘날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며 하느님이 바라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나름대로의 끝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어울려 사는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국 교회나 여타 종교인들 중에 자신의 교회와 자신이 절집을 위하여 노력하는 수많은 종교인들 말고, 한결같이 자신을 던져 이타적 삶을 실천하려는 훌륭한 종교인들을 볼 때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선생은 선생답게 자신이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바를 실천하려하고, 종교인들은 종교인들 대로 경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교행일치, 학생은 학생으로서 배운 대로 실천하려는 학행일치, 일반인들도 아는 대로 실천하려는 지행일치의 세상. 이런 세상으로 나간다면 이런 세상은 참으로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그 반대의 길로만 내 달리려는 세상의 대세가 야속할 따름이다.


 위 글은 <로마 바티칸시국에서>의 끝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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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시국은 로마의 동북쪽 언덕에 자리잡은 0.4평방km, 인구 900여명의 독립국가이다. 이곳에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관광객들에게 개방하는 곳은 바티칸박물관과 미술관, 성베드로대성당이다.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티칸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장사진을 이룬다. 그리고 대광장 쪽에는 아예 로마와 바티칸시국의 경계가 보이질 않는데, 이곳에는 이렇게 높은 담장이 둘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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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냐의 안뜰> '피냐'는 솔방을을 뜻하다고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곳을 통과하는데, 박물관과 '최후의 만찬', '천지 창조' 등의 그림이 있는 시스티나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면 가이드들이 설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밖에서 설명을 듣고 들어가게 된다. 이 안뜰 한가운데는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 모형의 조형물이 있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대형 솔방을 모형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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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조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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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오파트라의 와신상(?). 가이드의 설명이 그랬던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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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로 황제의 욕조가 전시되어 있는 뒤에 세우진 청동상. 거의 전부 석회암 등으로 이루어진 조각상들인데 드물게 볼 수 있는 청동상이었다. 주인공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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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정에 그려져 있는많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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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박물관과 이곳에 진열되어 있는 베네치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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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밖으로 보이는 로마교황청 정원

시스티나예배당에는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다음' 카페에서 사진을 퍼왔다. '천지창조' 그림을 보면서 몇 년 동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저 그림을 그려냈다는 것이 불가사이 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나중에는 힘들어서 그런지 인물들도

2명, 1명으로 줄여서 그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 그림을 그릴 때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나

였는데  교황 의전실장격인 체스나가 이를 비난하자 그를 지옥의 사신 미노스로 그려놓았다는 이야기와 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교황 파울로스 4세는 베드로의 얼굴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를 선도한 미켈란젤로의 풍모를 새삼 실감하게 하였다. 후에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속옷을 입게 된 것은 교황의 명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제자 라보르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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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베드로대성당의 천국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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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대성당>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이며 성당 밑에는 역대 교황들이 묻혀 있다고 한다. 전세계 카톨릭의 본산답게  그 웅장한 규모며 화려함, 예술성 등 이번 유럽 여행에서 보았던 여타 성당들을 압도하였다. 1506년 교황 율리우스2세 때부터 고쳐짓기 시작하여 100여 년 동안 지어졌다한다. 그 사이 교황이 여러 명이 바뀌고, 설계사와 건축가가 숱하게 바뀌면서 개축되었다 한다. 주제단 천정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를 하였고, 자연 채광이 되도록 하였으면 돔 천정의 수많은 그림들도 인상적이다. 이 성당은 라틴십자가 모양을 본떠서 설계되었다고 하며 그 길이가 187m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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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베드로성당 앞 광장> 이 광장은 수많은 청중들이 교황의 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넓게 조성햐려했는데,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주변에는 열주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열주랑을 떠받치는 기둥이 181개인데, 그들이 보는 위치에 따라 일직선, 또 다른 배열로 보이도록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광장 중앙에는 화강암 분수와 거대한 하나의 돌을 조각하여 세워졌다는 이집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무솔린이 교황청과 협상을 통하여 라테란 조약을 체결하여 현재의 바티칸시국의 경계를 확정하고 그 기념으로 이 광장에서 떼베레강에 이르는 대로를 건설하였다 후에 파과하기도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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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일행이 바티칸시국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하여 찾아간 로마 시내의 한 피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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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를 흐르고 있는 떼베레강

 

 

홍해를 건넘

 

 

황금 브로치 : 기원전 7세기경 오리엔트 시대, 에트루리아 문화의 것임.

 

 

희극의 여신 : 바티칸박물관

탈리아(왼쪽). 희극적인 가면, 지팡이, 악기 심벌 등은 원래의 진품을 잃어버린 후 다시 만들 때 추가 된 것들이다.

 

 

말과 마차 : 1792∼93년에 공사가 끝난 비가의 방은 사문의 안뜰 꼭대기 층에 위치해 있다. 같은 층에 칸 델라브라 미술관이 있다. 방 가운데에 이름을 갖게 한 대리석 상이 있다. 마차 자체는 대부분 기원후 1세기경의 로마 조각이지만, 조각가 프란세스코 안토니오 프란조니가 말과 마차 바퀴 등을 덧붙였다. 당시에 유행되었던 유물 보존 경향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예이다.

 

 

첫 사도들의 부름

 

 

최후의 만찬

 

 

최후의 심판

 

 

카노바 페르세우스 : 나폴레옹이 1797년 약탈하여 파리로 가져가 버린 아폴로를 대신하기 위해 피우스 7세가 1802년 구입한 것이다.

 

 

콘스탄틴의 방

 

 

토루소 :바티칸박물관

현관으로 관광객들이 들어모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전망대 토루소를 보다 큰 뮤즈의 방으로 옮겼다. 클레멘트 7세 때 옮긴 이 토루소는 미켈란젤로가 매우 좋아한 것으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마 헤라클레스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리석으로 된 이 조각은 기원전 1세기경, 아마도 베로스피 쥬피터의 진품을 만든 아테네의 예술가 아폴로니우스의 작품일 것이다.

 

 

티그리스강 : 최근에 8각형 정원에 배치된 것으로 하드리아 시대의 조각을 모방한 것이다. 바오로 3세가 전망대에 가져다 놓았다.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머리와 오른쪽 팔, 왼쪽 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젤로의 감독 아래 모두 추가로 조각되었다.

 

 

피에타

 

 

헤르메스 : 이 조각은 1543년 바 오로 3세 에 의해 정원 소장품으로 추가되었다. 이 조각은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으며, 완벽한 인간의 육체적 균형미가 완벽하게 구현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조각은 기원전 4세기인 하드리아 시대의 그리스 청동상을 복사한 것이다.

 

 

아리아드네상 : 바티칸박물관

미술관 다른 한쪽 끝에는 1776∼78년에 미켈란젤로 시모네티가 확장한 조각상의 방이 있다. 이곳에는 아리아드네상이 서 있다.  이것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을 기원후 2세기에 로마 사람이 복사한 조각상이다.

 

 

아비람의 심판

 

 

아우그스투스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 기원후 14년에 죽은 로마의 첫번째 황제의 상으로 프리마 포르타에서 그의 부인 리비아의 저택 유적 가운데서 지난 세기에야 발굴되었다.  기원전 20년에 만들어진 청동상을 보고 그의 부인을 위해 대리석으로 다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아테네여신상 : 기원전 4세기 때의 청동상을 기원후 2세기경 로마에서 대리석으로 복사한 것이다.

 

 

열쇠를 넘겨줌

 

 

예수의 세례

 

 

예수의 시험과 문둥병자를 고쳐줌

 

 

전망대의 아폴로 : 이 유명한 조각은 이미 1503년 전망대에 있었으며, 율리우스 2세의 고대 유물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었다. 파르테논 조각군이 발굴됨으로써 기원전 4세기에 아티카 출신의 한 작가가 만든 청동상을 모방한 복제 품으로 판명될 때 까지 수세기 동안 수많은 조각가들의 모델이 되어 온 작품이다.

 

 

사암비석 :  투트모시스 3세와 함께 해셉스 여왕이 아몬신에게 제사를 드리리고 있다.(제 18왕조, 약 기원전 1400년).

 

 

사암조각 : 남자의 머리 모습을 한 사암 조각(제6왕조, 약 기원전 2250년).

 

 

서사시의 여신 : 바티칸박물관

칼리오페의 상은 발견될 당시 목이 없었다. 조각가 가스파레 시빌라가 로마제국 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한 여인의 목 조각을 가져다가 이 여신의 상에 붙인 것이다.

 

 

석관 : 목자와 죽은 부부를 묘사한 욕조 모양의 관이다 ( 3세기 후반 )

 

 

시스틴 예배당

 

 

실레누스 : 어린 디오니수스와 함께 있는 실레누스(약 기원전 300년경) . 리시푸스의 한 추종자가 만든 그리스 진품을 로마에서 복제한 것이다. 1985∼86년에 바티칸 박물관을 위한 캘리포니아 미술 후원 단체의 후원으로 복원되었다.

 

십계명 돌판

 

 

아담과 이브의 유혹

 

 

아리아드네상

 

 

람세스2세의 어머니 : 투이아의 거대 화강암 조각상(제19왕조, 약 기원전 1250년).

 

 

마르스의 상 : 1835년 토디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5세기에 만든 청동상이다.

 

 

모세의 생애에서

 

 

모세의 이집트 여행

 

 

미이라를 위한 석관 : 제22왕조, 기원전 930∼ 800년

 

 

바티칸 박물관 내부

라파엘레 스테른이 1817∼22년에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지었고, 나일강 상과 새로 구입한 고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볼로냐 방의 천장

 

 

부케로 성합 : 기원전 7세기 후반.

 

 

비너스 펠릭스 : 이 비너스상은 라오쿤, 아폴로 조각상과 함께 1509년에 이미 전망대 정원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원전 4세기경에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비너스상을 모방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조각의 얼굴은 2세기경의 한 여왕후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인인 파우스티나이거나 혹은 코모두스의 부인이며, 파우스티나의 며느리인 크리스피나의 모습으로 추정 된다.

 

라파엘과조수들

 

 

라오쿤 : 이 조각군은 트로이 사제에 관한 이야기 중 마지막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사제는 트로이 목마의 계략을 국민들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팔라 아테나의 저주를 받아 끔직한 죽임을 당한다. 대 플리니의 기록에 따르면 기울리아노 다 상갈로와 키켈란젤로가 이 조각상을 발견하고 율리우스 2세로 하여금 사도록 하였다 한다. 그가 언급한 장소인 티투스 황제의 왕궁터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조각 작품은 1506년 1월 14일 발견되었다. 6월 1일 바티칸으로 옮겨질 때 로마 시내의 모든 종이 울려 이 사실을 축하했다. 이 조각은 초기에 기독교 시대 로드 출신의 조각가들이 만든 진품으로 여겨져 왔다. 이 작품은 이미 로마 시대에 그 독특한 표현 기법으로 유명했었다. 발굴 당시부터 미켈란젤로를 포함한 수많은 작가들이 이같은 작품을 만들기 원하였다. 로마 사람들은 라오쿤을 그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로물루스의 조상인 아에네아스가 역사의 결 과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트로이에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최근에 어떤 학자는 이 조각상은 진품이 아니라 페르가뭄에서 기원전 2세기 후반경에 만들어진 청동 작품의 복사본 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도미시안의 출발 :  기념부조(8196 A,D). 황제의 얼굴 대신 그의 후계자 네르바의 모습이 새겨졌다, 왜냐하면 황제 사후 그는 원로회의에서 격하 되었기 때문이다.

 

 

 

나일강가 조각상

 

출처 : 바티칸 박물관미술관
글쓴이 : 꽃님황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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