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화대국이며 문화인의 대명사 같은 프랑스사람들이
100여년전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조선의 선비문화의 시각으로 보면
야만적이고 지저분한, 아주 비위생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파트내에 화장실 시설이 없다보니 대부분 5층으로 되어 있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길에 오물을 모아서 던지거나 쓰레기를 던져서 길가던 사람들이 항상 위를 쳐다보면서
조심해서 다녀야했고 길에 떨어진 오물을 밟지않기 위해 발에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굽이 높은 하이힐이 생기고 모자가 생겼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야 세계제일의 멋지고 세련된 파리지앵(파리남자), 파리지엔느(파리여자)들이
100년도 더된 옛날에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19세기 오스만 파리시장이 추진한 파리근대화계획 덕분에 잘 짜여진 도로와 예술적 건물과
거미줄처럼 발달된 상.하수도 시설을 갖게 되었고, 문화와 에술을 사랑했던 선조들의 창작혼으로 인한
수많은 문화예술 걸작들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관관객들을 년간 7천만명 이상이 모여들고
이 관광수입이 프랑스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전체적으로 경제적 효율이 독일이나 영국 등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고 파업이
다른 유럽국가보다 많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대국으로 역할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엄청난 관광수입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이런 앞선 문화와 이를 이끄는 정책과 포도주, 불어, 무용, 의상, 제빵, 음악 등이
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유학생들에게 동경과 매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니 우리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도 서울이 만일 유럽에서
벨기에나 포루투갈 등 유럽 주변에 위치해 있다면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 찬란한
예술의 향기를 바탕으로 우리도 프랑스에 버금가는 관광대국의 위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가장 먼 국가지만 5백년 가까운 고려의 역사와
5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중국과 일본과는 또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로서
정말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 놀거리 등이 풍부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정착되고 홍보가 된다면
지금의 700만명수준의 외국인 관광객이 천만명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드는 하나 하나의 작품이나 건축물들이 백년, 천년이 지나도
변치않고 빛나도록 지금부터 정성을 기울여 우리를 문화대국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후손들은 조상들의 지혜로운 유산덕분에 우리들을 칭송하면서
자랑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천년이 넘는 영원의 도시 로마처럼, 이백년이 지나도 도시의 선이 살아있는 파리처럼...
겨울의 에펠탑과 샹드 마르스(예전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의 연병장이었답니다.)
12월초에 점등하는 콩코드광장과 개선문사이의 샹젤리제 거리의 현란한 크리스마스 장식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엥발리드의 작은 성당, 이렇게 푸른 하늘은 파리에서 쉽게 보기 어렵다.
에펠탑과 함께 파리와 프랑스의 상징인 개선문
영국과의 백년전쟁의 무대였던 몽 셍 미셀
파리 노트르담 사원 건너편의 셍미셀 광장, 젊은이들의 모임장소로 유명하다.
파리 인근의 모네가 살던 Giverny, 그의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 개양귀비꽃과 뒷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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