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에 가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이 있다. 하룻밤은 물론 닷새까지는 침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더 묵고 싶다면 닷새가 지나 아랫마을에 내려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찾으면 그만이다. 그것도 진정 필요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주인은 있으되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밥해주고 이부자리 챙겨주고 술이나 차를 따라주니 자신을 스스로 남자기생이라 부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으레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청학동 박단골 상투머리에 자리잡은, 그야말로 모두가 주인인 ‘주인없는 집’ 무아정(無我亭)이다. 절 같은 한옥 건물 두 채엔 6개의 방이 있어 비좁게는 40명까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마루에 앉으니 겹겹으로 중첩된 지리산 자락의 골골들이 사열을 받듯 도열해 있다. 지리산과 결혼했다는 짧은 승려 머리의 50대 후반 주인은 저녁이 되자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드느라 바쁘다. 무아정을 찾은 한 여성이 도우려 하지만 한사코 뿌리치 며 편안히 쉬라고 말한다. 밥을 짓는 사이 방문객들은 이방 저방을 둘러본다.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품이 도저히 남성의 손길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빨아서 차곡차곡 개켜놓은 타월과 황토와 감물을 들인 면 이부자리는 어느 특급호텔 못지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 한쪽에 놓여진 발재봉틀로 그것들을 손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방바닥은 무명천을 바르고 콩댐을 해 어린 시절 고향 안방에 누운 기분이다. 밥이 다됐다는 소리에 방문객들은 통나무로 만든 밥상이자 찻상에 빙 둘러앉았다. 구수한 된장과 산나물들로 그득하다. 누군가가 가져온 삼겹살을 구워 싸먹으니 금세 게눈 감추듯한다. 소주 한 잔씩이 돌아가고 술기운이 오르자, 무아정 주인이 산에서 나는 각종 열매와 약초로 담근 술을 내놓는다. ![]() 질문이 쏟아졌다. 왜 이런 곳에 혼자 사느냐, 돈을 받지 왜 그러냐… 등. 세상사람들의 눈높이론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게다.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던 그가 음악 하나를 틀어준다. 무아정에 인연 따라 왔거든 무거운 마음의 짐일랑 내려놓고 가라 한다. 대금산조에 실린 장사익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미워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다/ 너무나 벅찬/ 당신이기에 말없이/ 돌아서서 조용히 가련다/ 별같이 많은 사람/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잘생겨서 아니고/ 못나서도 아니다/ 너무나 높이 뜬/ 당신이기에 고개 숙여/ 걸으며 두 눈을 감는다.” 그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객들도 한데 어우러진다. 금방 방 안이 춤판으로 변했다. 내가 없으니(無我) 모두가 하나가 됐다. 이내 열띤 토론 이 벌어지는가 했더니, 누군가가 소리 한가락을 뽑아댄다. 대금과 장구가 장단을 맞춘다. 그는 다만 지극정성으로 ‘사람들 마음의 발’을 닦을 뿐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그저 좋은 마음들을 듬뿍 담아 가지고 각자 처소에 돌아가 그 마음을 나누기만 하면 된다. 극진히 대접받은 자만 남을 대접할 수 있는 법. 방문객이 없을 땐 그는 빨고 닦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아정 호텔’의 청소부이자 관리원이 된다. 한 사람이라도 오면 그는 바로 일을 멈추고 서비스 맨으로 돌아간다. 행여 일을 하고 있으면 불편해할까 봐서다. 덕분에 쉰다는 생각에 오는 손님이 반갑다. 인연 따라 알고 찾아온 이들을 정성 다해 모시는 일이 그에게는 삶의 존재 이유다. 이세상 태어나 남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자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는 베트남전 총탄 흔적을 몸에 지닌 상이용사다. 지금까지 무아정을 찾은 사람은 4000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쌀독이 무아정은 집을 비워도 문을 잠그는 법이 없다. 누구나 주인이 되어 주변에선 무아정을 돕겠다고 번번이 나서지만 좌절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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